1. <자산어보>에 대하여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생활을 하며 집필한 3권의 해양생물 사전입니다. 자산은 흑산도를 뜻하며 흑산도 인근 227종의 바다생물에 대해 채집하여 습성과 쓰임새외에도 민간요법, 조리법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산어보의 집필 이유는 흑산도에 여러 종류의 어류가 있지만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흑산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크기, 특징, 맛, 어획시기 등을 조사하여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산어보에는 상어의 비중이 컸는데 책의 내용에 ‘암 상어의 몸 안에는 2개의 태보가 있고, 거기에서 알이 생기는데 부화 된 알은 어미의 태보 안에서 새끼상태로 6개월~1년 정도 머문다고 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내용은 지금 현대에 알려진 상어의 생태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입술 끝에 있는 두 개의 낚싯대 모양은 등지느러미가 변형된 것이다. 그 끝에는 부드러운 막이 달려 있어, 미끼와 같은 역할을 한다. 가짜 미끼인 막을 이용해 접근하는 물고기를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아귀의 설명입니다. 이토록 깊은 바다에 사는 해양 생물까지 기록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흑산도 주변 바다를 드나들던 해녀,해남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정약용에 의해 자산어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필사본만이 전해지고 있고, 국가 중요 과학 기술자료로 등재 되었습니다.
2. <자산어보>의 역사적 배경
네 형제 중 첫 째인 정약전은 호는 손암, 자는 천전 이라고 합니다. 넷째는 다산 정약용인데 둘은 어릴 적 부터 우애가 두터워 학문적으로도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 관계였다고 합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아끼는 마음이 깊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가서도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 편지는 후대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습니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노론계 벽파 사람들을 경계하고 그밖에 다른 정파의 사람들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여러 정파들 중 남인계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779년 천진암에서 천주교 서적을 처음 접했습니다. 오롯이 성리학만을 연구 하는 조선이었지만 그들은 천주교를 진리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서학이나 천주교 서적을 탐독하고 해석하는 일은 금지되었고 사학에 불과하였습니다. 정조의 사망 후 순조가 즉위하게 되는데 나이가 어린 순조를 대신하여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이 때 정순왕후는 노론 벽파 사람들과 손잡았고 정조의 측근들을 탄압하였습니다. 그것이 노론 벽파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일어난 신유박해라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정약전의 집안은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둘째 종은 순교 하였고, 첫째 정약전과 넷째 정약용은 배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약전은 신지도로 유배를 가고 정약용은 포항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정약전은 더 먼 흑산도로 다시 유배를 갔습니다.
3. <자산어보>의 줄거리
흑산도에 유배를 온 정약전은 사학을 했다고 처음엔 마을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가거댁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창대라는 사람도 살았습니다. 창대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입신양명을 하고 싶었지만 하층민이라 시험에 응시 할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글공부를 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뇌가 명석하고 해양생물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정약전은 해양생물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먹고 창대에게 도움을 주면 글을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창대는 성리학의 나라에서 천주교를 섬긴 정약전을 사학죄인이라 며 거절하였습니다. 정약전은 조선의 현실을 모르는 백성들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안고 술을 마시고 바다에 갔다가 물에 빠졌습니다. 지나가던 창대가 구해주었고, 다음날 문어를 잡아다 주었습니다. 창대는 이웃이 세금문제로 어려움에 처하자 대신 처벌을 받았는데 정약전이 나타나 창대를 변호해주고 풀려나게 해줍니다. 둘은 서로 조금씩 가까워 졌고 정약전은 본격적으로 해양생물을 탐구하고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창대는 조선 최고의 양반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정약전과 창대는 조금씩 다른 학문적 견해를 보입니다. 정약전은 계급도 없고 출신성분도 따지지 않고 임금도 없는 인간자체가 평등한 세상을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 정신을 이어나가기를 원했지만 창대는 출세만을 생각했습니다. 망가진 조선의 양반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모습에 정약전은 창대를 구박 했습니다. 창대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창대의 비상함을 본 아버지는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창대는 과거시험에 응시했고, 뛰어난 실력으로 진사시를 통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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